방랑자: 끝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 조회 948 추천 0 비추천 0 작성일 2021.01.13 17:05 크눌프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떠돌이 인생이 아무 의미도 없을까 봐, 자신이 겪은 그 모든 고통과 행복이 허무에 지나지 않을까 봐 두려워했지만 신과의 대화, 자기 안의 더 깊은 무의식과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깨닫는다. 그는 인생을 허비하거나 탕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의 꿈’을, ‘자유라는 이름의 목마름’을 선물해주었다는 것을, ‘그녀만 내 곁에 있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 아니라, 실패했지만 사랑했다는 기억만으로 이미 그녀에게서 인생의 모든 축복을 선물 받은 것이었음을. 크눌프는 답답한 병원이 아니라 탁 트인 벌판 위에서 영원한 방랑자로서 마지막 숨을 들이마신다.만약 당신이 알 수 없는 방향에서 이상하리만치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온다면, 머릿속에서 곡조를 들어본 적 없는 낯설지만 달콤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산들바람을, 그 휘파람을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때가 바로 당신 안의 크눌프가 당신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 속삭이는 순간이니. 재산을 축적하고, 명성을 관리하고, 인간관계를 조종하는 정착민의 욕심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가 지닌 것을 돌아보고, 사랑한 흔적들에 만족하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축복하는 삶을 살라는 크눌프의 작은 소원이 당신의 심장에 가닿는 순간이니.(76~77쪽)